아닙니다. 과거에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구분은 인위적인 데다가 심지어 자기부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흔히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걸까요? 이런 분류가 생긴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권리들이 공유하는 공통요소들이 묻히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첫째, 이러한 구분이 처음 생긴 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이 권리들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하지 않았는데, 동서간의 냉전으로 긴장이 심화되면서 이 구분이 등장하게 됩니다. 서구의 시장경제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더 큰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고, 반면 동구권의 중앙계획경제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중요성를 강조했지요. 이로 인해 두 가지 독립적인 규약 – 하나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해, 다른 하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해 – 을 협상하고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냉전시대 이후 이런 엄격한 분리가 폐기되고 세계인권선언 본래의 형태로의 회귀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수십년 동안에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나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과 같은 인권조약에서 모든 권리들을 통합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해서는 국가가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인 반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투자가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되곤 하였습니다. 물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들 가운데 많은 경우 권리가 완전하게 향유되도록 하려면 높은 수준의 투자—재정적으로, 인적으로—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서도 노조의 자유나 직업선택의 권리와 같이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대해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투자가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위해서는 제대로 기능하는 법원, 수감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제공하는 교도소, 법률구조제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제도 등과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셋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비해 모호하고 불분명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인권조약에서 같은 수준으로 명료하게 정의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아래 예시들을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상 모든 인권의 향유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읽고 쓰는 능력이 없다면, 직장을 구하거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기가 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들이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 기아가 발생할 확률이 더 낮습니다. 따라서 깊숙히 들여다보면, “시민적, 정치적 권리” 나 “경제적, 사회적, 시민적 권리”라는 구분은 별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 점점 일반적인 표현이 되어 가고 있지요. |